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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책]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본문
세상이 참 혼란하다. 주식시장은 연일 요동치고, '야수의 심장'으로 베팅해 벼락부자가 된 극소수의 무용담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포모(FOMO)를 준다. 일터에서는 철저한 금전적 보상만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은 세계로 뻗어나가 TSMC도 파업을 하네 마네 하는 기사가 나오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업부(메모리/비메모리 등)의 실적에 따라 성과급이 나뉘며 동료를 향한 조롱과 비방이 일상화되는 씁쓸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선을 넓혀 지정학적 위기나 전쟁 같은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할 때도 우리는 종종 '게임이론'이라는 경제학적 도구를 빌려온다. 인간의 복잡한 본성과 세상사를 차가운 수학적 모델로 예측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실제로 들어맞는 사례들을 보거나 이러한 개념을 금융 시장에 적용해 수익을 내는 퀀트 트레이더들의 전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의적인 시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결국 오늘날의 세상은 철저하게 경제학의 논리로 굴러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데 경제학은 도대체 어쩌다가 모든 가치를 돈과 이익으로 환원하는 막강한 권력이 되었을까? 인간을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좇는 존재로 규정하는 주류 경제학의 관점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이기심을 정당화하게 되었을까?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품고 있던 와중, 우연히 들른 중고서점에서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단서, 혹은 지적 재미를 줄 것 같아 단숨에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인 조너던 알드레드(Jonathan Aldred)는 케임브리지 이매뉴얼 칼리지 부속 경제연구소 소장 겸 선임연구원이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토지경제학과 강사이다. 그는 경제학의 역사는 물론이고 현대 정치와 철학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현대 주류 경제 이론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경제학이 현대 사회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탁월한 연구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경제학이 지녀야 할 도덕적·윤리적 기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 문제에 대해 20년 동안 꾸준히 강의하며 논문을 발표해 오고 있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조너선 앨드리드 - 교보문고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이름하에 우리를 통제해온 경제학에 대한 놀라운 통찰!인간은 완벽한 합리성과 끝없는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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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에서부터 주류 경제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흥미롭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라거나,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지 않고 '경제학'을 가르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일침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는 1장의 서두에서 새로운 경제학 개념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등장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무게감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달에 읽었던 『럭키』에서 행운을 잡기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과도 궤를 같이한다. 명확한 인지에 행동이 더해지면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1장의 제목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모델'이 '현실'을 집어삼킨 현상을 정면으로 지적한다.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갑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기적 인간상에 대한 가정이 애초부터 잘못되었으며, 경제학자들이 수학적 모델을 쉽게 풀기 위해 발명해 낸 '가공의 인물'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경제학이 학문적 권력을 얻으면서, 애초에 단순한 '가정'이었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느새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라는 절대적인 진리로 둔갑하게 되었다.
경제 이론과 현실 세계의 행동 사이에 큰 괴리가 발견되면,
경제학자들은 이론을 바꾸지 않고 현실 세계를 다르게 가정해서 그 괴리를 해결하려 한다.
이후의 내용은 게임이론, 공공선택이론, 경제학 제국주의, 넛지 등 여러 유명한 주류 경제학 이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들이 어떻게 대중의 사상을 개조해 왔는지 추적한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역사적 배경에 무지했기에, 각 개념이 탄생한 배경을 함께 접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게임이론을 만들어낸 폰 노이만이나 존 내시가 언급될 때면 천재들에 대한 동경이 일다가도, 그들이 모여 있던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기상천외한 일화들과 그들에 대한 조롱을 마주할 때면 짜게 식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책의 3~5장은 도덕과 정치를 집어삼킨 시장 논리를 다룬다. 욕망이 정의를 이기다, 민주주의는 불가능한가, 무임승차의 경제학과 같은 주제들은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전히 소화하기 벅찬 부분도 있었다. 내 상식이나 신념과 부딪혀서 그럴 수도 있고, 다루는 개념 자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몹시 이기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머리로는 그들의 얄미운 방식이 좋아 보이지 않으면서도, 경제학적 관점의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프레임을 씌워보면 이따금 "저렇게 사는 게 효율적이고 맞는 건가" 하며 타협하고 싶은 혼란이 찾아온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이렇게 오락가락하는데, 더 거시적인 현상이나 긴 역사의 축에서는 이런 도덕적 딜레마가 얼마나 심할까 싶다. 그래서 이 장들을 읽어내는 데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다.
6장(게리 베커의 경제학 제국주의)과 7장은 인센티브 만능주의와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를 다루며, 모든 것을 돈(가치)으로 환산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여기서 독자는 인센티브와 '탁월한 성과에 대한 보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넛지라는 개념의 등장과 함께,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인센티브가 인간의 자발적 도덕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이미 알려진 선호나 타성적인 행동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라고 스스로 자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즉, 우리는 손익을 떠나 가치관이나 개인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가 있으며 누구도 이를 비합리적이라 비난할 수 없다. 저자는 경제 제국주의자들이 편협한 '합리성'의 잣대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이 스스로 되물을 수 있는 이 위대한 가능성을 묵살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결정이나 반려자 혹은 자녀 계획 같은 중대한 선택이 커피의 종류나 페인트 색상을 고르는 사소한 취향의 문제와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커피 시장이 있고 페인트 시장이 있다면,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시장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비유가 극단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시장 참여자의 '합리적 계산'이라는 가정에 집착하다 보면 도덕적 경계가 무너지며 세상이 이렇게까지 삭막하게 확장될 수 있겠다는 서늘함이 든다.
마지막으로 8장과 9장에서는 불평등이나 경기 침체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정당화하는 주류 경제학의 오류를 비판한다. 경제학이 수학처럼 엄밀하고 완벽한 학문이었다면, 우리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대표되는 파멸적인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마에스트로'라는 칭송까지 받았던 제13대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조차 청문회에서 아래와 같이 실토했다고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위기 관리와 가격 책정 시스템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 노벨상도 받았다. ··· 지난 수십 년을 지배하던 위기 관리 기법이었다. 하지만 그 지적 체계 전체가 지난 해 여름 와르르 무너졌다.
··· 위기 관리 모델에 입력된 자료가 대체로 지난 20년의 것, 즉 극도로 좋았던 시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호황기의 데이터로는 초유의 경제 위기가 발생할 확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금융위기 같은 뜻밖의 사건(블랙 스완)은 애초에 과거의 패턴으로 예측될 수 없기에, 그 확률을 수학적으로 추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다.
경제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가정하여 수려한 이론들을 세웠지만, 현실 세계의 인간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따라서 확률 정보에만 의존해 세상을 기계적으로 계산하려는 접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연구하는 사회와 분리된 '외부의 관찰자'라는 오만한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기예보는 날씨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경제 예측은 경제를 움직인다.
결국 우리 같은 일반인도 경제학을 단순하고 객관적인 자연과학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경제 사상이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방식과 도덕관념에 깊숙이 스며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경제는 수많은 사람이 행하는 선택과 행위의 총합이며, 따라서 경제의 미래는 기계적인 방정식이 아니라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경제의 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왜곡된 프레임을 걷어낼 지적 무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경제학의 이론적 엄밀성과 현실 적용 방법에 대해서만 표면적으로 고민해 왔던 나에게, 이 책은 주류 경제학이 지난 20여 년간 인간의 보편적 도덕관념에 어떤 씁쓸한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성찰하게 해주었다. 철저한 수학적 논리를 무기로 상아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았기에, 책의 제목처럼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권력이 통계나 수학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계속해서 간과한다면, 대중이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심판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솔직히 단숨에 읽어내기엔 굉장히 무겁고 어려운 책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각 챕터가 던지는 철학적 화두가 깊어 한 번 읽고 바로 이해되지 않는 구간도 많았다. 그래서 가벼운 교양서로 마냥 추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경제학의 기저에 깔린 서사적 요소를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던 익숙한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 한 번의 독서에 그치지 않고, 곁에 두고 여러 번 곱씹어 읽어본다면 세상을 꿰뚫어 보는 단단한 중심추가 되어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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