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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책] 달러 이후의 질서 (Our Dollar, Your Problem)

응솩이 2025. 12. 2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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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율이 다시 불안해졌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때마다 뉴스는 미국의 금리, 연준의 발언, 지정학적 리스크를 나열하지만, 정작 더 근본적인 질문은 잘 나오지 않는다. 왜 전 세계는 여전히 미국의 통화 정책에 이렇게 크게 흔들려야 하는가, 그리고 이 구조는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미국 우선주의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세계 각국 정치·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 같은 시점에서는 이 물음이 더 이상 추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중 『달러 이후의 질서』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만 놓고 보면 통화 패권의 균열이나 달러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는 책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금융경제를 넘어 국제 정세와 역사, 지정학적 맥락을 함께 다루고 있었다. 읽다 보니 이 책의 원제가 Our Dollar, Your Problem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직설적인 제목이 오히려 책의 문제의식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달러가 왜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체제가 세계뿐 아니라 미국 자신에게까지 어떤 비용을 떠넘겨왔는지를 짚는 책이다.


저자인 케네스 로고프 (Kenneth Rogoff)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국제금융·국가부채 분야의 대표적 학자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구조적으로 분석해온 인물이다. 특히 세계 금융의 흐름을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와 유럽 부채위기를 예측했고, 2015년 중국발 금융위기 역시 수년 전부터 경고했다. 또한 체스에 일가견이 있어 1978년 국제체스연맹에서 최고 타이틀인 ‘그랜드 마스터’를 부여받았다. 체스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책의 내용에 체스와 관련한 경험과 서사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러 이후의 질서 | 케네스 로고프 - 교보문고

달러 이후의 질서 | ★ 10년 안에 달러의 구매력은 형편없이 쪼그라들 수 있다 ★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자 IMF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날카로운 통찰달러는 과연 영원한 안전자산일까? 각종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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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을 달러 블록의 미래에 가장 핵심적인 나라로 평가하면서도, 마냥 블록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도 잘 짚어준다.

트럼프 이후 중국이 달러 블록에서 완전히 이탈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경제의 나머지 절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개인의 생존 전략과 철학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중국과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하고 반중/반미 정서로 나라가 갈라져있는 독특한 상황 속에서, 감정적인 선호는 없고 그저 효율적으로 잘 살고 싶은 나는 어떤 스탠스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그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러 패권이 점진적으로 약해지는 것을 지적하고 지역화하는 금융 시스템과 통화 체제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1부와 2부에서는 과거 달러의 패권에 맞선 과거의 도전자 국가들을 소개하고 현재의 도전자인 중국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저자가 젊었을 때 체스를 위해 러시아에 가서 있었던 일과 같이 개인적인 일화와 함께 흥미롭게 읽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제는 달러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다.

 

3부에서는 달러와 함께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 나라들이 생존해온 방법에 대해 다룬다. 이들 국가가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환율 변동이 불안하니 달러에 통화를 고정하고, 신뢰를 수입하려 하며, 고정환율제를 통해 안정된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이 선택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위기를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고정환율은 위기를 없애기보다는 미루는 장치에 가깝고, 그 사이 누적된 불균형은 결국 더 큰 붕괴로 돌아온다.

 

이에 대해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던 레바논과 아르헨티나가 어떤 방법으로 고정환율제를 유지했으며, 결국 달러 페깅이 불가능게 되면서 위기를 맞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일반적으로 이들 국가는 특이한 실패 사례로 취급되지만, 로고프는 오히려 전형적인 경로를 밟았다고 말한다. 재정 규율이 무너지고, 정치적 합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환율을 고정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문제는 특정 국가의 무능이나 도덕성보다는, 달러 중심 질서 속에서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된 구조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적 세계통화를 발행함으로써 미국은 정보에 특권적으로 접근하고
강력한 금융 제재를 부과하는 등의 비정형적 편익에 더해 뚜렷한 양적 편익을 얻는다.

그렇다면 지배적 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도 따를까?

 

앞선 장들이 달러 체제에서 살아가는 나라들의 이야기였다면, 5부는 달러를 발행하는 나라가 감당해야 하는 혜택과 부담을 다룬다.

달러 패권의 구체적인 유익 한가지는 외국인들이 놀랍도록 다량의 미국 부채를 기꺼이 보유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국 정부는 지불해야하는 금리를 낮출 수 있고, 위기 때 오히려 달러의 가치가 다른 통화에 비해 절상되는 효과를 갖는다.

 

군사력이 통화 패권에서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은 모두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을 때 자국 통화의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다. 이는 미국의 군비 지출과 연관이 있다.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의 비율이 줄어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절대적인 금액은 무시무시하게 크며 이는 현재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 국방비 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통화 패권이 시장의 신뢰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은 전 세계가 심각한 침체와 불황에 빠졌을 때 보험을 제공해야 한다. 보험이라는 표현이 조금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면 미국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는 외국 자산의 달러 시장 가치가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에 미국이 세계의 은행가로서 다른 국가가 갖는 미국 자산의 위험도에 비해 외국 자산의 위험도가 앞도적으로 더 높다. 이런 부분에서 순수한 편익만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달러의 패권과 안정에 대한 외부의 도전이 중대하기는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은 내부에 있다.

놀랍게도 많은 경제학자와 경제 정책 전문가는
인플레이션 조절이 순전히 기술관료적 문제이며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믿는다.

 

6부에서는 시선을 다시 미국 내부로 돌린다. 달러 패권의 가장 큰 위협이 중국이나 새로운 대안 통화가 아니라, 미국 자신일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늘어나는 국가 부채, 그리고 ‘금리는 영원히 낮을 것’이라는 믿음이 어떻게 달러 체제의 기반을 갉아먹고 있는지를 짚는다.

 

로고프는 특히 미국이 지배적 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지나치게 당연하게 여기게 된 점을 위험 신호로 본다.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이를 계속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달러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확신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규율을 약화시킨다. 달러 패권이 미국의 힘이었던 동시에, 미국을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부채 문제는 레이달리오의 『빅 사이클』에서 다룬 바가 있어서 이 책의 문제의식이 낯설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기도 한 '팍스 달러 시대의 종말?'이라는 질문은 ‘달러 이후의 질서가 오는가’라기보다는, ‘미국은 이 지위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달러 패권이 정점에서 내려오는 추세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달러는 곧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계속된다면, 달러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점진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주요국들의 부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터질 것에 대한 믿음이 희미하고 느낌적인 느낌에서, 더 구체적인 '의견'으로 선명해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아직은 어렵지만, 이런 책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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