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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책]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응솩이 2026. 2. 2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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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의 다짐이 무색해질 만큼, 책 읽는 것을 소홀히 했다.
이번 달 전자책 구독이 되지 않은 것을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월말이 되어서야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종이책을 읽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이번에 읽은 책은 조선시대 고위 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단계에서 출제되었던 시험 형식, 즉 ≪책문≫에 대한 책이다.

예전에 SNS 광고를 보고 공감하여 사두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이다. (2015년에 나온 책이 2025년에 광고로 나오다니..)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원칙과 도덕이 부재해 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작년에도 꽤 회자되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가 혼란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저자인 김태완 작가는 동양철학, 한국철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숭실대, 경원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으로 6년간 재직했다. 이후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 등으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 김태완 | 현자의마을 - 예스24

책문, 위기의 시대에 묻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13가지 근본 정책『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출사표지만, 단순한 출사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건 바로 이 책에

www.yes24.com

책문은 기본적으로 왕과 고위 공무원(지원자) 사이의 질의응답 형식이기 때문에 정치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문장 자체는 철학적으로 읽힐 수 있지만, 해석이 덧붙는 순간 정치적인 문제로 확장되는 느낌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부도덕하거나 이상한 작당모의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스스로를 숭고하고 선한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는 타입은 아니라는 의미다. 옳지 않은 것은 고치려 노력하되, 인간의 오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편이랄까.

다만 개인의 삶과 정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 어렵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스스로도 맞지 않다는 걸 알 법한 주장까지 이상한 논리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습은 솔직히 좀 역겹다. 대체로 어느 정당이든 여당이 되면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기득권이 되다 보니..)

 

이 책은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왕의 책문, 그에 대한 답변, 그리고 관련된 역사적 사례나 저자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그중에서 나는 ‘올바른 교육의 길’, ‘난세의 국가경영’, ‘인생무상’이라는 세 장을 골라 읽어 보았다.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명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고대의 교육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어떠하며,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말해 보라. 더불어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 인재를 올바르게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보라.”

 

이에 대한 조종도의 답변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학교행정은 교육법과 교육제도가 확립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조종도의 답변 중에는, 학문을 하는 이유가 결국 돈과 명예(봉록과 벼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욕심과 삶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학문에 힘써야 할 젊은이들로서 서울 사는 학생들은 떼를 지어 나아왔다 물러났다 하고,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태하게 흩어집니다.”라는 문장은 과거의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서울 밖을 나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지금도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신분제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간다. 단순히 암기를 잘하고, 글을 화려하고 장황하게 쓰는 과거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한 가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항목으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규모 공채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기시험과 서류 평가로 일정 부분을 걸러내고,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하는 방식의 취지 자체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결국 여기서 누락되는 인재를 최소화하고, 부적절한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서는 채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한 명이라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 눈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중요한 문제인 건 분명하다..

정벌이냐 화친이냐

광해군의 책문이다.

"왕이 외적을 대하는 방법은 정벌 아니면 화친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 같은 정벌이라도 흥하고 망한 차이가 있고, 같은 화친이라도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진 차이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 어떻게 해야 올바른 도리로 외적을 대함으로써 나라가 욕을 당하거나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박광전의 대책은 정벌은 힘, 화친은 형세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정벌할 만한 힘이 있어야 정벌하고, 화친할 만한 형세가 되어야 화친하는 것입니다.

 

그는 정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적에게 정벌해야 할 죄가 있고, 이쪽에 제압할 힘이 있다면, 완고하여 복종하지 않고 고삐를 끊고 제멋대로 날뛰는 말과 같은 야만인들은 마땅히 목을 베어 내걸어야 한다.”
반대로 화친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재앙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있고, 이쪽이 화친을 해야 할 형세라야 화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해 보인다.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중국 같은 강대국과의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적 구호나 일시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형세’를 감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계산된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이유도 단순히 비위를 잘 맞춰서가 아니라, 반도체나 조선업처럼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위에 외교적 수사나 상징적인 선물이 더해지면서 시너지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이 맥락은 사회생활에도 적용 가능한 것 같다.
어떤 글에서 “증권가는 숫자가 곧 인격”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결국 실력과 성과가 있어야 상대방이 인정하고, 그 위에서 감정적 유대도 형성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어떤 실력을 기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힘과 형세를 만드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 질문도 광해군이 낸 것이다.

"가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은 해이고, 밝으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은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 그믐밤에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데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문인데, 앞선 장들에 비해 훨씬 감성적인 질문이라 눈길이 갔다. 국가 경영과 외교, 교육 제도처럼 거대한 담론을 다루던 흐름에서, 인간 개인의 시간과 감정으로 시선이 옮겨 오는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에 수록된 이에 대한 답은 이명한이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몸은 성한데 운이 다한 사람도 있고, 재주는 많은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객지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쉽게 원망이 생기고, 뜻있는 선비는 유감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서글픔이 단순히 ‘늙음’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덕을 충분히 쌓지 못하고 학문에 통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세월의 흐름이 슬픈 이유는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자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개 책문은 정치적 현안을 논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형식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개인의 내면과 감회를 묻는 질문도 존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조선의 선비들 역시 세월을 아쉬워했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해의 끝에서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과거를 배우는 일이 단순히 제도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인재 등용에 대한 세종의 책문도 인상 깊었고, 다른 책문들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었다.

모든 부분을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너무 극단적이거나 모난 부분을 완곡하고 둥글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성찰하는 기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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